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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 라면과 눈물

by 퓔립 2025. 4. 8.

10년전 나의 이야기.

백수가 된 첫 일주일은 의외로 달콤했다.
눈 뜨면 낮 12시, 슬쩍 일어나 커튼을 걷고 햇살을 받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게 진짜 삶이지.”

그런데 신기하더라.
사람이 매일 놀면, 노는 것도 금방 질린다.
일주일쯤 지나니, 그 ‘달콤함’이 점점 ‘불안함’으로 식어갔다.
놀아도 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내 무의식이 먼저 눈치챈 거다.
문득 통장을 열어봤다.
잔고: 143,000원
그 순간부터 모든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마트에서 라면 한 봉지를 집을 때 손이 떨렸고,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도 괜히 주눅 들었다.
돈을 쓰는 모든 행동이 죄처럼 느껴졌다.
결국, 라면 한 봉지를 4등분했다.
스스로도 웃겼다.
어느 날은 국물만 먹고, 어느 날은 면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밤, 배고파서 잠이 안 왔다.
진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끓였는데,
냄비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라면에서 뭔가가 나왔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로 하루를 버틴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했다.

그날부터였다.
감정이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터졌다.
울고 또 울었다.
펑펑, 질질, 훌쩍훌쩍…
아침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진짜로,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그게 다였다면 그냥 흔한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

복잡한 가정사.
그게 마지막 방아쇠가 됐다.
내가 숨겨두고 꾹꾹 눌러두었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날 밀어냈다.
‘이제는 끝내도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신기하게도 점점 마음이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