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7~ 완결 10년후 지금의 나에게.
EP07. 삶은 간신히, 그러나 분명히 계속되었다그 후로 나는 일했다.기계, 설비, 도면, 철근, 배관…익숙한 일을 하며 생계를 붙들었고월세방을 벗어나 반지하로,반지하에서 원룸으로,원룸에서 작은 투룸으로 옮겨갔다.모든 건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아직도 가끔은 두려움이 밀려왔고무력감이 덮치기도 했지만그럴 때마다 나는 산책을 했다.그게 내가 배운, 나를 구하는 방법이었다.⸻EP08. 10년 후, 나는그리고 지금.그 모든 시간이 지나고,나는 34평짜리 자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버젓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귀엽고 야무진 딸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함께 웃기도, 싸우기도, 고민하기도 하는내 아내와 유부남으로 살고 있다.10년 전 그 방바닥에 엎어져 고량주에 절어 있던 내가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아마 이렇..
2025.04.08
-
EP05. 자존감 -3에서 +1로
10년전 나의 이야기 그날 샤워를 한 나는,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었다.그냥 방 안에 다시 틀어박히면 또 며칠이고 무너질 것 같았다.그래서 밖으로 나갔다.딱히 갈 데도 없었고, 누굴 만날 자신도 없었다.그저 집 근처 골목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10분쯤 걸었을까. 편의점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내게 말했다.“오늘 햇살 좋지 않아?”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산책을 했다.계획도 목표도 없었다.그저, 나를 움직이는 연습이었다.집 밖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움츠러든 몸과 마음도 아주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어느 날은 노트북을 열었다.이력서 폴더를 열었다.그날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지만다음 날은 이름을 썼고그..
2025.04.08
-
EP04. 바닥에서 본 세상
10년전 나의 이야기 : 살아버린 다음 날 아침, 그리고 이상한 변화그날 새벽.고량주 한 병에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바닥에서 눈을 떴다.창문은 밀폐되어 있었고, 방안은 축축하게 눅눅했다.그런데도… 나는 살아 있었다.심장이 뛰고 있었다.숨이 쉬어졌다.“왜?”“어떻게?”“내가 아직 살아 있다고?”혼란스러웠다.실패한 자살이 기적처럼 느껴질 리 없었다.그저, 멍했다.정말, 멍… 했다.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속은 뒤엉켰고, 입에서는 쓴내가 났다.그런데 이상하게도,그날 아침 창밖으로 들어온 빛은 유난히 따뜻했다.햇살이 내 이마를 스치고, 벽을 타고 흘렀다.처음이었다.오랜만에 아무 소리도 없는 아침.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데,창문 너머에서 누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아이였다.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 가는 ..
2025.04.08
-
EP03. 마지막 밤
10년전 나의 이야기.번개탄, 청테이프, 그리고 고량주그날 밤,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슬프지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오히려 담담했다.마치 오래 전부터 예정된 약속을 지키러 가는 사람처럼.슈퍼에 들러 번개탄을 샀다.계산대 앞에서 직원이 날 힐끔 쳐다봤다.나는 애써 웃으며 “캠핑 가려고요”라고 말했다.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걸 보며‘내가 참 연기 잘하는 놈이었구나’ 싶었다.다음은 다이소.청테이프를 집어 들었다.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혹시라도 누가 나를 의심하진 않을까.하지만 세상은 너무 바빴고,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그게 더 서러웠다.‘그래, 이래도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지. 나 하나 사라져도.’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한 구석에 남아 있던 고량주 한 병.사놓고 잊고 있던 그 술을 ..
2025.04.08
-
EP02. 라면과 눈물
10년전 나의 이야기. 백수가 된 첫 일주일은 의외로 달콤했다.눈 뜨면 낮 12시, 슬쩍 일어나 커튼을 걷고 햇살을 받으며 생각했다.“그래, 이게 진짜 삶이지.”그런데 신기하더라.사람이 매일 놀면, 노는 것도 금방 질린다.일주일쯤 지나니, 그 ‘달콤함’이 점점 ‘불안함’으로 식어갔다.놀아도 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내 무의식이 먼저 눈치챈 거다.문득 통장을 열어봤다.잔고: 143,000원그 순간부터 모든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마트에서 라면 한 봉지를 집을 때 손이 떨렸고,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도 괜히 주눅 들었다.돈을 쓰는 모든 행동이 죄처럼 느껴졌다.결국, 라면 한 봉지를 4등분했다.스스로도 웃겼다.어느 날은 국물만 먹고, 어느 날은 면만 먹었다.그러던 어느 밤, 배고파서 잠이 안 왔다.진짜 어쩔 수..
2025.04.08